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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디담의 밀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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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라엘 공군(IAF)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항공전 역사상 3위의 제트 에이스로 꼽히는 에이스 파일럿 아미르 나후미(Amir Nachumi /אמיר נחומי)는 1945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원래 러시아에서 살던 유태인이었으나 2차 대전이 끝나고 아미르 나후미를 임신한 채 곧바로 시나이 반도로 이주해왔고, 그가 태어났을 무렵의 이스라엘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영국 위임 통치령에 속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시오니즘 운동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 독립한 후인 1962년에 17세가 된 청년 나후미는 징병제를 시행하던 이스라엘 국방군에 입대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를 원해 공군 조종사 양성 코스에 44기 생도로 입교하여 도전한 그였지만, 엄격한 선발과 교육 과정을 모두 통과하지 못하고 중간에 탈락하고 말았다. 조종사가 되지 못한 나후미는 이스라엘 육군의 기갑 병과에 배속되고 중사 계급장을 달고 2년간 지상군과 함께 군 생활을 겪었다. 1964년에 제대한 나후미는 히브리 대학에 입학하여, 화학 물리학을 전공한 다음 1967년에 졸업했다. 그가 23세가 되던 해인 이때 3차 중동전(6일 전쟁)이 발발하자, 중사로 예편한 나후미는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AMX-13 경전차에 탑승하여 전차장 임무를 수행하며 싸웠다.


근접지원 임무 중인 제113비행대대 소속의 닷소 우라강


# 전차장에서 전투기 파일럿으로 

이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스라엘 공군은 손실된 파일럿을 보충하고 공군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예전에 파일럿 양성 코스를 밟았던 병력 자원을 다시 재교육시키는 방안을 떠올려 즉시 시행했고, 아직도 조종사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나후미는 소집을 받자마자 응해 공군에 재입대하게 된다. 1968년 11월 21일에 아미르 나후미는 57기로 비행 교육을 마치고 소위 계급장을 달고 하초르 공군 기지(Hatzor Airbase)의 제113비행대대에 배속되어 어엿한 한 명의 파일럿이 되었다.


햇병아리 전투기 조종사 아미르 나후미 소위가 처음 몰게 된 기종은 이스라엘이 프랑스에서 구입해온 닷소 우라강(Dassault Ouragan)으로, 마침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이집트군이 주축이 된 중동 연합군과 산발적인 소모전(War of Attrition)을 치르던 시기였다. 2년 동안 나후미 소위는 우라강 전투기를 몰고 대지 공격 임무로 50회 출격하였고, 1970년에 8월 7일에 잠시의 평화가 찾아오자 공군 수뇌부는 그의 비행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비행학교의 교관으로 임명했다. 1971년에 다시 시나이 반도를 둘싸고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중위로 진급한 아미르 나후미는 제107비행대대에 전속되어 최신예 전폭기인 F-4E 팬텀으로 기종 전환 훈련을 거쳤다.




# 제4차 중동전
욤 키푸르 전쟁으로도 불리는 4차 중동전이 발발한 1973년 10월 6일, 제107비행대대는 시나이 반도 남쪽 끝의 오피라 공군 기지(Ofira air force base : 현재 샤름엘셰이크 국제공항)에 주둔하고 있었다. 전쟁 발발에 관한 소문이 나돌며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던 그 날 아침, 휴가 중이던 나후미 중위는 비행대 지휘관 이프타 스펙터(Iftach Spector : 1940~) 소령에게 비상 소집을 알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기지로 향했다. 그가 14:00 무렵에 기지에 도착했을 때, 나후미 탑승기의 후방 관제사 요시 야빈(Yossi Yavin) 소위는 이미 F-4에 탑승해 체크 리스트를 살피며 이륙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고, 편대 2번기 탑승조인 다니엘 샤키(Daniel Shaki) 중위와 데이빗 레게브(David Regev) 소위는 둘 다 조종석에 앉아 출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이 지상에서 전투기에 탄 채 스크램블 대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방공 레이다의 스크린은 이집트 공군 편대가 오피라 기지를 향해 쇄도하고 있는 광경을 비춰주고 있었다. 나후미는 출격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판단을 믿고 2대의 F-4를 긴급 발진시켰다. 그들이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집트 공군 소속의 MiG-17MiG-21로 편성된 28대의 전투기들이 오피라 기지 상공에 들이닥쳤다. 이때 만약 나후미가 긴급 출격하지 않았다면 기지는 활주로를 시작으로 고스란히 선제 공격을 받아 대기 중이던 다른 전투기들이 이륙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지 상공을 초저공으로 패스하는 107비행대대 소속의 F-4E 


"내가 스로틀을 밀고 서서히 유도로를 택싱해 이륙 코스에 접어들자, 관제탑에서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어조로 이륙을 허가할 수 없다고 반복해 교신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지시를 무시하고 조금도 주저없이 활주로를 박차고 상승해 고도를 높였다. 레이다로 적기를 탐지하기도 전에 이미 기지 상공을 향해 수십 줄의 비행운이 꼬리를 끌며 다가오는 것이 육안으로도 선명히 보였다.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미확인기들은 기지 상공에서 고도를 낮추며 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적기 조우를 확신한 나는 곧바로 연료탱크를 버리고 산개할 것을 명령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1대의 MiG-17을 골라 꼬리를 물고 2발의 AIM-9D 미사일을 연거푸 발사해 격추시켜 버렸다. 수평을 유지하며 속도를 붙이던 내 눈에 지상의 호크 미사일 발사대에 폭격를 가하던 또 다른 목표가 포착되었다. 그들은 지상 목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내가 꼬리에 붙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곧 대가를 치렀다. 나는 기수 아래에 달린 M-61 벌컨을 발사해 2대의 MiG-17에 손상을 입혔지만 이때 기총의 포연을 삼킨 왼쪽 엔진이 갑자기 추력을 잃으며 스톨을 일으켜 사격을 중단해야만 했다. 즉시 재시동을 건 나는 두 번을 시도한 끝에 다시 파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기지 상공은 수 십 대의 미그 전투기와 우리 팬텀이 끌고 다닌 비행운과 기지의 대공포가 터뜨리는 포연으로 인해 온통 어지러웠다. 어쩌면 다행히도, 나와 다니엘 샤키의 편대기를 빼곤 나머지 모두가 적기였기에 오히려 마음 편히 교전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교전을 계속한 나는 또다시 2대의 미그기를 AIM-9D로 격추할 수 있었다. 내가 인솔한 샤키의 F-4는 3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우리 편대는 군데군데 파공이 뚫린 활주로를 피해 유도로를 이용해 착륙했고, 첫 날의 전투는 이렇게 끝났다."


오피라 공중전은 욤 키푸르 전쟁에서 벌어진 첫 항공 전투였다.


이집트 연합공군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이 했던 것처럼 지상 기지에 대하여 감쪽같은 선제 기습을 가하려고 했지만,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무산되고 말았다. 나후미 중위를 포함하여 6분간 치러진 이 교전에서 7대의 적기를 확인 격추시킨 4명의 장교들은 종전 후 비행 수훈장(Medal of Distinguished Service)이 수여되었고, 이 날의 전투를 가리켜 오피라 공중전(Ofira Air Battle)으로 불리게 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0월 13일에 제107비행대대는 시리아의 샤이칼 공군 기지(Saiqal AB)에 대한 공습에 출동했다. 이 작전에서 1대의 MiG-21이 우군 편대 중간에 끼어들어 공격을 시도했지만, 나후미 중위가 곧바로 따라붙어 AIM-9D로 격추시켰다. 그 다음날 제107비행대대는 이집트 공군의 탄타르 기지(Tanta AB)를 목표로 삼고 공습을 감행했다. 이 비행 도중에 나후미와 윙맨 메이어 모스트(Meir Most) 중위는 나일강 삼각지 북부의 만소우라(Mansoura) 부근에서 2대의 MiG-21과 교전하여 모두 나후미 중위가 격추시켜 버렸다. 이 전투의 결과, 나후미 중위는 4차 중동전이 끝날 때까지 7대 격추를 기록하여 이스라엘 공군의 F-4 탑건으로 자리매김했다.


F-4 조종석에서 내려온 아미르 나후미


Double Strike / Rober Taylor 作



# 이라크 원자로를 박살내다
1978년, 아미르 나후미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제107비행대대장이 되어 있었다. 2년 후에, 나후미 소령은 이스라엘 공군에서 2번째로 F-16 네츠(Netz)를 장비한 라맛 다비드 공군 기지(Ramat David Airbase)에서 제110비행대대장으로 임명된다.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원자로에 대한 폭격 작전을 강행했을 때, 비행대대장 나후미 소령은 제110비행대대에서 참가한 4대 중 지휘기로 이 작전에 참가했다. 이때 그가 몰았던 F-16 네츠 228호기는 2,000파운드 Mk.84 폭탄 2발을 탑재하고 고도 50미터라는 초저공을 아음속으로 침투해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하여 직접 폭격을 가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으로부터 몇 주가 지난 7월 14일, 레바논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던 이스라엘 공군 A-4 스카이호크에 대하여 요격을 시도한 시리아 공군의 MiG-21과 A-4의 엄호기로 나선 제110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그는 이 전투에서도 MiG-21을 1대 격추시켰는데, F-16으로 실전에서 처음 적기를 격추한 이 전과는 아미르 나후미 소령이 사상 최초였다.


F-16 시뮬레이터로 기종 전환 훈련 중인 아미르 나후미


오페라 작전 당시 나후미 소령이 탑승했던 F-16A​



# 레바논 전쟁
1982년의 1차 레바논 전쟁(1982 Lebanon War), 즉 이스라엘의 작전명 '갈릴리 평화 작전"에서는 제110비행대대는 합계 23대의 시리아 공군기를 격추했는데, 이 중 6대가 비행대대장에 의한 것이었다. 나후미 소령은 이 당시의 격추에 대하여 전방위 조준과 사격이 가능한 신형 AIM-9L 미사일 덕분이라고 겸허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Operation Babylon / Jack Fellows 作


# 후반 군 경력
공군 비행학교에서 퇴짜를 맞고 육군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던 나후미 소령이 거둔 총 격추수는 무려 14대 -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의 공군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공군에서도 격추수 3위에 해당하는 최고의 에이스 중 하나가 되었다. 1983년에 가족과도 같았던 제110비행대대를 떠난 그는 이스라엘 공군 정보부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4년 후에 라맛 데이빗 공군 기지 사령관에 취임했다. 1989년에는 공군 준장으로 승진한 그는 이스라엘 공군의 작전 행동, 훈련을 총괄하는 참모장이 되어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1991년에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수송을 단행한 솔로몬 작전(Operation Solomon)에서는 항공 작전 지휘를 맡아 C-130에 동승하여 아디스아바바 상공을 비행하면서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하며 지휘하기도 했다. 34대에 달하는 이스라엘 공군의 수송기들이 36시간 이상 쉴새없이 오가며 비행이 이어졌고 14,000명이 넘는 수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수송해냈다.



나후미 준장의 전투기 조종간을 잡은 마지막 비행은 고향과도 같은 제110비행대대 소속의 F-16으로 1995년 6월 26일에 날아오른 것이 최후였다. 1996년에 이스라엘 공군에서 예편한 그는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일선에 계속 남기를 희망했고 2005년까지 중동전에 참가했던 베테랑들과 함께 비행학교의 교관 직무를 계속했다.


최근의 아미르 나후미 준장


아미르 나후미 준장은 공군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에 이스라엘 유수의 방위 기업체인 TIL 시스템즈와 트라이페이즈 기술(Triphase Technologies Ltd.)에서 CEO로 역임했다. 지금은 3명의 자식과 손자들을 둔 가장으로 퇴역 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후미 준장이지만, 그의 전과 14대는 MiG-17, MiG-21, MiG-23 처럼 모두 정예 훈련을 받은 전투기 조종사를 상대로 하여 거둔 전과라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미 공군 아카데미의 전투기 조종사 교제 중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실전을 바탕으로 배운 전훈을 습득할 수 있도록 생도들로 하여금 중동의 항공전에 관해 연구 강의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아미르 나후미가 미그기 4대를 6분 만에 떨어뜨리고 적 부대를 모두 쫓아내 버린 오피라 항공전도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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